진정한 교육은 적성의 발견이고 소질의 개발이다. 기회평등학부모연대 사무총장 연 호 교육에 적성을 중요시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 당연한 일에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제도나 시스템 어떤 인재를 말 할 뿐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이제는 how에 대해 고민해야 적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대한민국의 윗 세대는 적성을 찾을 만큼 한가롭던 세대가 아니었다. 당장 배를 곯는데 적성을 찾겠다고 한다면 저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과정에서 모든 교육의 의무나 책임은 국가에 맡겨졌다. 그러나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이제는 꿈으로만 부르든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라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상황이 복되다는 것을 먼저 청년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청년 실업은 내가 가고 싶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지 일자리 자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육에서는 이러한 세대에 발 맞추어 대변혁의 시대가 열려야 함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 시점에 오늘 발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적은 비교가 아니다. 절대 평가가 시행 되어야 한다. 발제문에서 성적을 비교의 대상으로 보아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 통념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학교 선생님은 이 배운 과목에 대해 얼마큼을 알고 있는지 시험을 본 것인데 부모는 집에서 몇 등 했냐고 묻는다 이때는 경쟁 상황으로 돌변했다. 그런데 과연 경쟁이 나쁜 것일까?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과도한 경쟁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공정한 경쟁은 활력소가 된다는 것은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다만 현재 학교 교육의 경쟁에는 문제가 있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체육으로 예를 들자 체육에 천부적 자질을 갖고 태어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경쟁은 잘못된 경쟁이다. 때문에 경쟁을 하지 않게 하는 것보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영선수끼리의 경쟁은 매우 중요한 경쟁이 될 것이다. 1차 토론회 때 외국의 성적 기준은 윗몸일으키기를 처음에 시행할 때 50개를 하는 친구와 5개를 하는 친구 성적은 그 이후에 노력으로 얼마만큼 향상이 되고 결과를 이루어냈느냐를 경쟁한다는 것이다. 그 경쟁을 통해 성적을 내는 것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게으른 나를 일깨울 수 있고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정함에 있는 것이지 경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의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적성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게 하여 자신의 소질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다. 오랜 기간 아이들과 교육으로 씨름하며 26년을 지내는 동안 처음에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교육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교육자(포괄적 부모까지)는 발견하고 살리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각기 다른 특색 있는 교육 기관이 설립 되어야 한다. 많은 학부모들은 상급학교 배정이 가까우면 많은 질문을 한다. 어느 학교가 좋으냐고 그러나 솔직히 더 좋다 괜찮다 하는 것은 학교 선생이 입시에 얼마나 열정적인지? 우리 아이의 내신이 유불리를 따져 묻는 것이다. 나름 이런 무참한 교육현장에서의 부모로서 궁여지책이다. 대학만 가라 그 다음에는 알아서 하는 것이다. 대학까지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 받은 부모는 교육의 모든 핵심을 입시에 맞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인 교육이니 소질에 맞는 교육이니 하는 것은 다 강 건너 가버리는 상황이다. 배정이라는 것도 너무나 구시대적 표현이다. 배정, 배급, 이런 속에서 어떻게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그건 너무나 불가능한 꿈이다. 바꾸어 주어야 한다. 멍석을 제대로 깔아야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국가에서는 꿈과 끼를 찾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을 국가가 학생과 일대일로 붙어서 찾아 줄 수 없다. 제도에 갇혀서 찾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제도를 풀고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 교육 산업이 아이들의 적성을 살리는 길이다. 교육을 통한 영리 목적이 나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앞뒤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 그 첫 번째 목적이 개인의 영리를 위해서이다. 물질주의가 아니다. 일에 대한 정당한 댓가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것을 나쁘다고 가르치는 것은 나라 전체가 와이파이가 되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뜬 구름 잡는 소리요 현실성이 없는 인식이다. 교육 산업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앞으로 살아갈 토대가 될 올바른 가치와 기술을 전수하게 된다면 그것이 정당한 일이다. 교육이 산업이 된다면 교육이란 상품을 하급으로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런 상품은 누구라도 사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는 이미 지식 정보의 사회이다. 그런데 지식 정보 관련된 교육을 받고 나와서 가야 할 곳이 공장이라면 당연히 실업을 선택할 것이다. 배운 만큼 활용하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들을 위하여 우리는 더욱 교육 문화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 해야 한다. 이제 여유를 가진 우리의 삶만큼 교육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적성과 소질에 찾고 그 속에서 어떻게 교육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훨씬 의미 있는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적성을 찾기 위한 자율 학기제가 시행되지만 말뿐인 자율 학기제로는 꿈과 끼를 찾을 수 없다 대부분 교육에서도 아이에게 자기 주도 학습이 필요하다고 하니 자기 주도 학습을 가르치는 학원을 보내는 것이 자기 주도 학습을 하는 방법이 아니다. 부모가 내려 놓아야 한다. 당장 빵점을 맞더라도 공부 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게끔 해야한다. 마찬가지다.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 국가가 자율 학기제를 만들어 학교에서 그에 맞는 계기 수업을 하는 것은 결국 내려 놓지 못하는 부모와 다를 게 없다.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학교에 자율권을 주어 올바른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학교를 퇴출 시킬 수 있을 때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이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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